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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숭모사

샘물문화 2017. 9. 26. 11:15

청산도에서 글 자랑 하지 마라

청산도에서 똥장군을 지는 사람도 한시(漢詩) 한 두 소절은 읊조릴 수 있다는 소리에서

청산도에서는 버선까지 팔아서라도 배움에 정진한다는 소리가 나오게 된 배경이 된 것이

바로 청산도 부흥리 숭모사에 배향되신 귤은 김류 선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수 거문도(巨文島)의 이름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완도 청산도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그대로 청산에 살면서 주민들을 계몽 교화하시면서 일생을 마치셨다.

호남의 노사 기정진 선생의 후학으로 당대 성리학 이론가이었지만

관직을 바라지 않고 청산에서 주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지역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또한 얼마나 뜻깊은 말인가? 청산에서 글자랑 하지 마라는 말이...


청산도에서 가서 우연히 동네 노인분을 내 차에 태워 도청리 항구까지 실어다 드린 적이 있었다.

차안에서 그 노인분께 물었다.

어르신은 청산도에 지금까지 사시면서 어떤 것이 가장 좋으시냐고 하니 하시는 말씀

"청산에서 글 자랑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가 가장 좋다고 하셨다.

참으로 청산에 사시는 김류 선생의 후학다운 답변이라 생각한다.

물질보다는 정신적인 풍요을 즐기는 슬로우시티 청산....


귤은 김류 선생





구들장논이 펼쳐져 있다.

구들장논을 적시며 흐르는 물은 청계리 보적산 "피내리고랑"에서 내려오는 물이었다. 청산의 절개를 말해주는 "피내리고랑"

왼쪽 끝마을이 귤은 김류 선생의 숭모사가 있는 부흥리이다. 피내리고랑은 임진왜란 당시 청산도에 침범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청산도 온 주민이 보적산에 장기미 해변바닷가에서 채석한 돌을 올려놓고 조총을 가진 왜구와 오직 돌만 가지고 맨몸으로 항전하여 왜구와 주민들의 피가 고랑을 이루어 흘러내렸다하여 지금도 "피내리고랑"으로 불리우고 있다. 권율의 행주대첩보다 먼저 맨몸으로 항전한 항일기록이다. 지금도 보적산 산정부근에는 당시의 바닷가 돌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보적산(사진 오른편 끝산) 맞은 편 양지리에 피어난 상사화...

왠지 피내리고랑과 구들장논, 보적산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멍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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