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살아가며

조선대학교치과병원 조형훈 선생

샘물문화 2018. 4. 16. 19:55

딱 2년이 조금 더 지났다.

오늘이 2018년 4월 16일이니 말이다. 

사고가 난 것은 2016년 3월 26일.... 

자전거를 타다가 어떻게 넘어졌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넘어지고 나서야 내가 왜 넘어졌지 그 원인을 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넘어질 때 어떻게 넘어졌는지는 알지 못하고

단지 넘어지고 나서야 굉장히 큰소리로 자전거 앞바퀴 튜브가 터져버린 것이다.

"땅~"

고압튜브에 고압타이어를 사용하는 650x23C 튜브와 타이어는 

"빵~" 하는 소리와 함께 찢어졌고

나는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얼굴을 쳐박는 Face Planting을 당한 것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맨땅에 얼굴박기"를 한 것이다.

자전거전용도로 위에 방치된 돌을 보지 못하고 멍하니 가다가 부딪혀서... 그대로

그 결과로 앞니 3개가 우습게 되어버렸다. 

그것도 대문치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눈물이 나온다.

당시에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안이 벙벙하고 어떻게 되었는지 도대체가 멍하니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거 의학용어로 뭐라더라...

"탈구"라고 하던가?

한 개는 아예 잇몸에서 뽑혀서 바닥에 뒹글고 있었다. 

불쌍한 내 이빨...

그리고 두개는 덜렁덜렁... 입안에서 지맘대로 흔들리고 있었고....

입술은 천공되어 말그대로 엉망진창...


사고당시 응급실 조치사진과 현재 사고후 살아난 대문치 3개


다행인 것은 자전거를 탈 때

제가 오클리 고글을 안면유리가 큰 것을 사용하고 있어서

넘어지면서 오클리 고글에 커다란 패인 홈이 날 정도로 바닥에 긁혀

그 덕분에 얼굴은 조금이나마 살릴 수 있었다.


자전거 사고시 정말 고글을 잘 써야 한다.

절대로 유리제품은 안된다. 절대 고글을 써야 된다.

사고나면 그 이유는 저절로 알게 된다. 

돈 좀 아끼려다 비싼 댓가를 치룰 수 있다.


그 이빨을 장갑낀 손에 들고 그대로 119를 불러타고 

조선대학교 응급실에 달려갔다. 

그리고 응급 이빨접합(Implant)을 하였다. 사고난 후 한 30분이 걸렸을까?

장갑낀 손에 들고 간 이빨을 다시 끼워넣는다고 이빨을 살릴 것인가?

나이가 나이인만큼 부정적이었다.

또한 흔들거리는 탈구된 2개의 이빨까지 살린다는 것은

아무리 의학기술이 좋다고 해도 부정적이었다. 

이빨 3개를 한 순간에 날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50년 이상 아무 이상없이 지금까지 썼는데.... 모든 것이 포기상태였다.

오히려 맘이 편하다.


문제는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데... 3개나 그러면 돈이 얼마나 깨질 것인가?

그리고 본래의 이빨처럼 잘 작동하여 문제없이 쓸 수 있을 것인가가 걱정된다.

일단은 의료보험이 있고 상해보험 들어논 것이 있고 하니

돈걱정은 별로 안되지만.....

오늘 2018년 4월 16일까지 해서

한 130만원쯤 내호주머니 돈을 치료비용으로 지불한 것 같다.

몇번이고 포기하자! 포기해야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고 

앞니 그것도 대문치를 다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맘이 아프다.

이빨이 아픈 것보다 맘이 더 아프다.


아무리 의학기술이 좋다고 해도 살릴 수 없다는 생각을 먼저 해버린 나~!

그것이 옳은 판단이었을 줄 모른다.

그런데 조선대학교 치과병원에서는 자꾸만 "이빨을 살려보자"고 한다.

그것도 토요일날 오후에 사고가 나서 응급조치하고 전문의를 만난 건 월요일이었다.


조선대학교 치과병원 치주보존과 조형훈 선생이 주치의였다.

우선 젊다! 

그리고 아주 재기(才氣)가 얼굴에 넘쳐 흐른다!

학교다닐 때 아주 공부 잘했고 무슨 일이든 재능있게 잘했을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무엇하나 확실하게 대답해주지 않으면서 "노력해보자!"고만 한다.


내가 10대도 아니고 벌써 잇몸이 줄어들고 탄력성이 없어지는 50대인데

빠진 이빨을 그리고 아탈구된 이빨을 살린다고 하니

그것도 토요일날 빠진 이빨을 월요일날에야

다시 조정하고 끼워넣고 촬영하여 맞춘다고 하니.....

속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안될 것을 이상하게 몰아가는 것 아니냐고 속으로 비웃기도 했다.


속으로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내 나이가 있는데?

50년 넘은 이빨이 세상구경하러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고 살려질 것인가?

주변에서도 부정적인 생각만 말한다. 나도 쾌히 동의하고...

임플란트 비용 500만원쯤 들어가겠지?

그래도 임플란트 예후가 좋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을 하고...


그런데 조형훈 선생만 심각하다.

몇번이고 이빨을 다시 교정한다고 잡아 비틀고 있다.

가면 무슨 촬영한다고 하면서... 

그리고 겨우 통증을 잡아가는 이빨을 다시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인다.

그냥 눈물만 난다. 

아픔의 눈물이 아니라 안되는 이빨을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내 자신이 처량해서다.

몇번을 되돌아보고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도저히 살릴 수 없을 것 같았던 이빨이 다 살아났다.

물론 2개는 신경치료를 받았지만 1개는 신경까지 살아났고

지금은 3개 다 원래있던 이빨로 아무런 이상없이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니 오늘까지도 무사하게 사용하고 있다.


아무리 임플란트가 좋아도 원래의 이빨만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니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지?

소위 말하는 재식(Reimplant)으로 이빨 3개를 살리다니.....

애들한테나 통한다고 하던데 60이 다 된 잇몸이 줄어드는 사람에게 재식?

거저 이빨 3개를 얻은 느낌이다.


안겪어본 사람은 모르리라....

내 이빨로 아픔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그렇게 통증과 고통을 안겨다 주었지만 지금은 말끔하다.

혹시나 중간에 이빨이 자체 거부반응을 일으킬까 해서 계속 관찰한다고

치과병원에 계속 확인차 다니는 불편은 있었지만

본니를 살렸으니 몇번이라도 병원에 갈만한 값어치는 있지 않은가?

그래도 자전거는 계속 탔다.

동해안과 북한강까지 가서 잔차를 탔다...



사고후에도 자전거를 탔으나 2018년 올해는 업무 때문에 접어야 할 것 같다. 도저히 시간이 안난다. 같이 한 분에게 죄송하다. 혼자만 빠져서...


다치고 나서 이빨의 중요성을 알았다. 

그것도 살리자고 한번 가능성을 걸어보자고 몇번이고 이빨을 교정하면서

성심성의껏 자신의 재능을 힘껏 발휘해준 

조형훈 선생님에게 여기를 통해 감사드리고 싶다.

조용히..... 그것도 2년만에.... 

이빨이 완전 무사한 것을 확실하게 확인한 다음에야...


그것은 나를 못믿었기 때문이다. 

설마 탈구된 이빨을 다시 심어서 살려? 

무슨 심한 말을.... 안되지!

그것도 장갑낀 손에 그냥 들고온 이빨을?

그런데 그 이빨을 2년동안 원래의 그 자리에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아무런 말썽도 불편도 이상도 없이....

모든 것이 다 조형훈 선생님의 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세심하게 신경쓰고 확인하고 조치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준 결과다.


그 자리, 사고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도 그런다.

뭐 그런 일이 다 있냐고?

글쎄.... 없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없는 이빨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 때문에 초동조치를 안해 주었다고 119에게도 불평불만을 했다. 

이빨을 못살릴 것 같아서...

119가 무슨 택배냐고 했다. 아무런 초동조치도 없이, 응급구호도 없이

이빨을 손에 들고 가서 그대로 재식시술을 하게 만드는 것이 구호이고 조치냐고?

이빨 3개가 사라질 위기에 119의 조치는 정당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빨을 살릴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119에 대한 클레임을 내 스스로 파기했다.

119를 비난해서 무엇 할 것인가 하고....

오히려 감사드려야 할 119한테....

119가 없었다면 빠른 조치도 못하고

정말 이빨 3개를 그대로 잃어버려야 했을 것 아닌가?


나는 마음을 편히 가졌고 잃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잃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진짜 편했다.

살리면 감사하고 못살려도 어쩔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조형훈 선생의 재능이 빛을 발했다.

치료는 아무런 부작용이나 이상없이 진행되어갔다.

염증이 생기면 끝이라고 하던데 염증도 없었다.

그 결과

본래 가지고 있던 이빨 3개를 가지고 오늘까지 아무 이상없이 지내고 있으니....


오늘 4월 16일 가슴 아리는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오늘을 살고 있음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쓴다.


728x90

'살며 살아가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메라 보관함  (0) 2018.09.05
폭염속 야간달리기  (0) 2018.08.01
노란 상사화 부안 내소사  (0) 2017.09.06
남원 실상사 벅수  (0) 2017.09.04
구례 지리산 천은사  (0) 2017.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