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혼자서 외롭게 걷던 빛고을 산들 길. 멧돼지와 들개 출몰에 주의하라는 경고문을 보고 한 때는 그만 둘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전 구간 81.5㎞를 한 구간 한 구간 걷다 보니 한두 명씩 불어나 즐거웠고, 마지막 6구간에서는 무려 20명이 줄지어 걷는 희열을 맛보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단연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 효과가 컸다. 한 구간 걸을 때마다 소감과 사진을 올렸으며, 그 때 마다 페친과 카친들의 반응이 좋아 참가자가 늘어났고, 그러다 보니 입소문도 타기 시작했다. 걷다가 만나 함께 걷게 되었고, 특히 길목마다 리본을 달고 다니는 고마운 분도 수소문하여 같이 걸었다. 이 분은 칠순의 노익장을 과시하는 할아버지로 저녁을 사드리며 이야기를 나누였더니, 그야말로 네비게이션처럼 정확한 정보들을 쉴 새 없이 꺼내 놓으셨다. 가는 곳마다 이름과 핸드폰번호를 적어 리본을 매달아 놓았더니 언젠가는 한밤중에도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지리산에서 길 잃고 헤매는 등산객에게 네비처럼 안내를 해서 무사히 산을 내려오게 할 수 있었다는 감동적인 얘기도 들려 주셨다. 아울러 이번 대열에는 3년 전 빛고을산들길을 연구하고 설계했던 당시의 연구자와 공무원들도 기꺼이 동참했는데, 이 분들의 감회는 더욱 커 보였다.
필자는 얼마 전 ‘빛고을산들길을 아십니까?’ 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기고를 한 적이 있다. 비록 졸고였지만 호응이 좋아 여기저기서 빛고을산들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연락을 해 왔다. 더욱 반가운 소식은 게재해 준 신문사에서 빛고을산들길의 깃발을 예쁘게 만들어 준 것이다. 그날 우리 스무 명은 배낭에 이 깃발을 꽂고 줄지어서 최종구간을 걷게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걷다가 만난 저수지들은 자연 생태계가 보존되어 있어 좋았고, 하남산단 완충지역에 조성된 숲길은 잘 조성되어 있어 걷기도 참 편했다. 첨단산단 끝자락에 만들어진 시민의 숲 또한 잘 가꾸어져 있어 숲 사이로 걷는 재미가 솔솔 하였다. 임곡역에서 걸어 종점인 용산교까지 멀게만 느껴졌던 이 길도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걷다보니 여섯 시간도 어느새 지나갔다.
영산강의 첫다리인 용산교에 얽힌 짝귀와 째보이야기를 들으며 옹기종기 둘러 앉아 뒷풀이를 하였다. 모두들 하루 종일 걸었다는 성취감에다 막걸리로 목을 축이다 보니 쌓였던 피로가 한 잔에 싹 가셨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정겨운 대화를 나누던 도반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빛고을산들길을 널리 알려 사랑받는 광주의 둘레길을 만들자는데 뜻을 같이 하였고, 참가자들은 모두가 의기투합하여 빛고을산들길의 홍보대사가 되자고 다짐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빛고을산들길 사랑모임이 필요하다고들 했고, 내친김에 그 자리에서 임원진을 구성하자고 하여 산업계, 학계, 언론계, 관계인사들로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첫 사업으로 다음 달에 1구간을 함께 걷기로 약속하며 서로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빛고을산들길을 사랑하는 모임이 결성되었으니 명품길로 자리매김 되도록 구심체 역할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다만 이 길을 걷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유지보수관리가 잘 되어야 할 것이며, 일부 노선은 도로보다는 좀 더 쾌적한 산들길이나 강변로 쪽으로 변경되어야 걷기가 편할 것이다. 걷는데 혼동되지 않도록 안내판들이 보완되어야 하며 특히 출발점이자 종점인 용산교에는 별도의 포토존과 기념석도 설치해야 한다.
또한 길 중간 중간에 있는 마을을 지나가기 때문에 주민들과 마찰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인구 20만명의 베니스시민들은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불편해 한다는데, 빛고을산들길 주변의 주민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상생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주민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 있어야 한다. 이를 테면 군데군데 쉼터를 만들고 걷다가 쉬면서 그 곳에서 주민들의 농산품을 맛보기도 하고 사주기도 하는 배려와 나눔이 있어야 한다.
한편 둘레길의 국제공인기준은 100㎞라니 빛고을산들길의 부구간인 분적산, 어등산, 월봉서원 등지의 코스를 넣어 조정하면 더 좋을 듯싶다.
그리고 현재는 빛고을산들길이 구청별로 관리되고 있는데, 걸어 보니 방치되어 도저히 갈수 없는 길도 있었다. 신경을 쓰는 구와 그렇지 않는 구의 차이를 그냥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이는 시청에서 중심이 되어 각 구간별로 관리가 잘 되도록 유기적인 노력을 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하겠다.
지난 주 창원에서 열린 코리아둘레길 선포식에 다녀오면서 우리 빛고을산들길을 꼭 성공사례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다. 빛고을 시민 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해외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즐겨 걷는 광주의 둘레길을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