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산들길

제12회 빛길모 정기모임 안내

샘물문화 2018. 7. 23. 09:05


다음 8월 18일 빛길모 정례모임은

광주 빛고을산들길을 벗어나

앞으로 빛고을산들길이 걸어가야 할 모델로

이 지역 "강진 칠량 초당림"을 벤치마킹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초당림을 같이 걸어보면서 

빛고을산들길의 방향을 생각하는 모임으로

제12회 정기모임을 하고자 합니다.


제11회 분적산 모임의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박수로 통과되었습니다.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많은 회원님들의 성원을 바랍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세요

출처: https://www.chodang.com/corporation6


명예회장님 신문사 인터뷰(조선일보 7/8일자 B4~B5)

 

[여의도 3배 인공숲 만든 회장님… "200만그루 모두 자식같아요"]


전남 강진에 '초당림' 조성한 김기운 백제약품 명예회장
1969년부터 가꾼 숲… 모두 600만그루 심었는데 산불·태풍·간벌 등으로 
현재는 200만그루 자라 "초당림 꼼꼼히 다 보려면 차를 타도 사흘은 걸린다"

 


지난달 26일 전남 목포 기차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초당림으로 가자"고 했다. 40분쯤 달렸을까, '초당림에 거의 다 왔냐'고 물었더니 택시기사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산이 모두 초당림"이라고 했다. 초당림(草堂林)은 전남 강진군 명주리에 있는 인공 숲이다. 넓이가 960ha로 여의도의 3배가 넘는다. 개인이 소유한 인공림 중 국내 최대 규모다. 백제약품 김기운(96) 명예회장이 1969년부터 조성해 왔다.

이날 초당림 안에 있는 2층짜리 백제약품 연수원에서 김 명예회장을 만났다. 이날 새벽 서울 집에서 차를 타고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전에 2시간 정도 지프차를 타고 숲을 둘러보자고 했다. 숲을 구경하는 동안 김 명예회장은 "초당림을 꼼꼼히 다 보려면 차를 타도 사흘은 걸린다"고 했다.

―차를 타고 산속 구석구석 볼 수 있게 해놓으셨네요.

"임도(林道)라고 합니다. 초당림은 경제림입니다. 가구 만들 때나 건축물 내장재로 쓸 수 있는 나무만 심었습니다. 이 나무를 베어 운반하려면 길이 필요합니다. 산불 났을 때 소방차도 다닐 수 있고요. 초당림의 임도 길이는 총 50㎞입니다. 흙길이라서 정기적으로 잡초를 없애야 하는데, 이 작업만 일주일 걸립니다." 


―산림청에선 현재 초당림에 심은 원목 가치만 최소 270억원이라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총 600만주를 심었는데, 산불, 태풍 피해, 간벌(솎아베기) 등으로 현재 약 200만주 자라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가장 경제성이 높다고 인정받는 편백나무 지역은 약 300ha입니다. 백합나무는 해외에서 들여와 대량으로 심었는데, 적응도 잘하고 다른 나무보다 빨리 자라서 산림청에 조림수종으로 추천해 채택됐습니다. 2006년부터 전국 산림에 백합나무가 심어지고 있는데 5300만주가 넘습니다."

김 명예회장은 나무, 조림과 관련된 숫자를 또렷이 기억했지만 목소리는 희미했고 대화는 중간 중간 끊겼다. 그는 2년 전부터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혼자서는 제대로 거동을 못한다. 이날도 앉고 설 때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몸이 편찮으셔서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나무 심은 것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응했습니다."

48년간 여의도 세 배 면적 숲 가꿔


김기운은 1921년 전남 무안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보통학교(초등학교)만 나온 뒤 일본인이 경영하는 목포 한 상점에서 의약품 취급 일을 했다. 광복 후 1946년 8월 목포 남교동에 백제약방을 열고 의약품 도소매업을 시작했다. 그는 "온종일 약을 팔고 벌어들인 돈이 가마니로 몇 개씩 돼서 100장 한 묶음씩 약저울로 달아서 돈을 셌다"며 "섬 손님들이 가져온 돈에는 소금이 많이 묻어 있어 돈 무게가 더 나가는 바람에 따로 모아두기도 했다"고 했다. 회사는 서울 종로5가에 백제약국을 여는 등 전국 영업망을 가질 정도로 성장했다. 작년 백제약품 매출은 1조원이 넘는다. 그는 한창 회사가 커 나가던 1969년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왜 조림업에 뛰어들었습니까?

"5·16 이후 기업가도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광복이 없었더라면, 6·25 때 북한에 패했더라면 지금처럼 사업을 못 일으켰을 겁니다. 국가에 진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하다 산에 나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당시 쓸 만한 큰 나무는 도벌(盜伐)로 모조리 잘리고 작은 나무는 연료용으로 수난을 당해 벌거벗은 산이 늘고 있었습니다."

―나무 심기가 잘됐습니까?

"처음에는 대실패였습니다. 나무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사업 계획 없이 그저 산에 나무를 많이 심고 사람들이 베어 가지 못하게만 하면 나무가 저절로 자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오산이었습니다. 매년 방충·방재 작업, 비료 주기와 풀 깎기 작업을 해야 하고, 최소한 3년에 한 번씩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가지치기해야 하고, 임도 관리까지 해야 한다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특히 제가 매입한 명주리 산은 민둥산이면서 또 돌산이었습니다. 돌을 캐내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흙을 날라 채운 뒤 묘목을 심어야 했습니다. 회삿돈 거의 안 쓰고 자비로만 초당림을 가꾸려다 보니 부담이 많이 됐습니다. 초창기 나무 심는 데 하루에 동원한 인부만 500~600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초당림을 가꾸는 데만 약 150억원이 든 것으로 추산된다.

―주위에서 반대가 심했겠군요.

"품삯 받고 일하는 마을 사람들도 '이런 돌밭에 나무 심어서 무엇하냐'고 했습니다. '아까운 돈을 왜 이렇게 막 버리냐' '정신 나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가뭄과 추위에 전체 묘목의 50%가 죽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만두지 않았습니까?

"내가 조림 전문가였거나, 엄청난 돈이 들어가고 많은 정성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겁먹고 손대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 성격이 이렇습니다. 한번 손을 댄 것은 끝을 봐야 합니다. 사람이 일만 벌여 놓고 수습을 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기운은 독학으로 임업과 인공조림을 공부했다. 일본에서 관련 서적을 대량 구입해 읽고 조림기구도 들여왔다. 그는 1972년부터 초당림을 조성하며 배우고 느낀 내용을 조목조목 기록했고, 이를 모아 2007년 '초당육림 40년' 책을 출간했다.

"아내·아들 세상 떴을 때도 숲에 왔다"

'오늘은 구정(설)이다. 실은 평균 월 2회 (초당림에) 입산하였는데 이번엔 그러질 못했다. 가인(아내)이 2월 4일 타계한 것이다. …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죽은 이 한편 산 이 한편'이라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솔하에 수백명의 직원을 두고 방황할 수도 없어 다시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다. … (고향에 있는 아내 묘소 참배 후 초당림에 와서) 작업 사항과 자금 지출, 사업 계획을 검토하다. 1977년 2월 18일' (초당육림 40년 중 일부)

―4남1녀 중 셋째아들이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도(1984년 2월) 장례를 마치고 초당림을 찾았더군요.

"그때 충격이 너무 커서 사흘간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그래서 수면제를 먹고 자야 했습니다."

―초당림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는군요.

"울창한 숲속에 있으면 잠시 동안이라도 고민을 잊어버립니다. 지난 수십년간 고생한 기억이 사라지고 어린애처럼 행복할 때가 있습니다."

―초당림 나무를 종종 자식에 비유한다고 들었습니다.

"실제 자식이나 손자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예전에 가위하고 톱을 허리에 차고 나무 손질을 하러 가면 나무가 '고맙습니다' 나한테 절하는 것 같았습니다. 태풍이 몰려와서 나무 수천 그루가 뭉텅뭉텅 넘어지고 뿌리째 뽑히면 마치 내 자식들이 몸이 다쳐서 아파 드러누운 것처럼 안타깝습니다."

―제일 무서운 게 산불이라고요.

"서너 번 산불이 났어요. 1977년 2월 26일 첫 대형 산불이 났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논두렁을 태우다가 불길이 강풍을 타고 산으로 번졌습니다. 부랴부랴 초당림에 갔더니 관리소장이 달려와서 울더군요. '울지 마라. 걱정할 것 없다. 하나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다시 시작하자' 그런 식으로 해왔습니다."

"초당림 500년 이상 유지됐으면"

김기운은 고향 무안에 1980년 백제여상(현 백제고교)을 세웠다. 1994년 그의 나이 73세 때는 초당대학교를 설립했다. "주변에선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학교 경영이 정말 어렵다고 했지만 내 고향 무안이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나무는 어렸을 때 가지치기를 잘해줘야 고급 목재로 쓰일 수 있습니다. 사람도 똑같습니다. 어려서부터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는 또 백제여상에 핸드볼팀을 만들고 백제약품 계열사인 초당약품에도 실업팀(현재는 해체)을 만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여자핸드볼 국가대표 선수 상당수와 감독이 초당약품 소속이었다.

인터뷰가 1시간가량 이어지자 김 명예회장 숨이 가빠졌다. "건강에 굉장히 주의했지만 이제 약으로 어떻게 해 볼 시기는 지났습니다. 다 정리했습니다. 백제약품은 큰아들(김동구 회장)이 맡아서 잘 경영하고 있습니다. 개인 재산은 복지재단에 거의 다 기부했고, 사는 집도 그렇게 될 겁니다. 다른 것은 다 부질없는 욕심인데…. 학교하고 산만은 계속 지켜보고 싶습니다."

―창업해서 회사를 이렇게 키웠는데 부질없다니요.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200년, 300년 된 회사는 드뭅니다. 그런데 학교나 숲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곳이 많습니다. 500년도 되고, 1000년도 갈 수 있지요."

초당림은 일반인 입산이 제한된 숲이다. 산불 위험과 무단 채집으로 산이 망가질 것을 우려한 조치다. 그런데 2015년 강진군과 협의해 초당림 입구에 수영장이 생겼고 그때부터 여름 한 달간만 개방하고 있다. 지난달 23~ 24일에는 처음으로 숲 속 힐링 체험 행사가 열려 약 4000명이 숲을 찾았다. 김 명예회장은 "사람들이 숲을 보물로 생각하고 이를 잘 아껴서 후대에 전수하길 바란다"며 "내 남은 소원은 초당림이 500년 넘게 유지되는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초당림을 걸어 내려오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수령 40년이 넘는 어른 몸통만 한 굵기 나무들이 빼곡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07/2017070701746.html




제목강진군의 선택, ‘초당경영숲’
날짜2010-01-06첨부파일

 

 

최근 기후변화 현상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가운데, 기후변화의 원인인 탄소를 흡수하는 산림자원이 중요해지고 있다. 산림자원의 효율적인 경영모델이 될 만한 전남 강진의 ‘초당림’을 찾았다. 초당림은 백제약품의 설립자 초당 김기운옹(90)이 1968년 임업보국의 뜻으로 사재를 털어 조성한 경제림이다.

초당림은 국내 최대의 백합나무 군락지로, 전남 강진군 칠량면과 장흥군 관산읍의 경계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일대의 ‘미세기골’은 워낙 산간오지라 1960년대까지만 해도 관청에서 세금 메기러가기를 꺼렸을 정도라고 한다.

김기운옹은 ‘척박한 민둥산에 산업용 경제수를 심어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당시 정부의 시책에 따라 1000㏊에 이르는 임야에 편백, 백합나무(목백합), 테다송 등 500만 그루를 심었다.

특히 1971년부터 ‘숲속의 여왕’이라 불리는 목백합을 식재해 임업의 ‘그린오션’을 창출했다. 목백합은 합판, 가구재, 조각재 등으로 사용하는 고부가가치 나무지만, 과거엔 국내 토착화가 어려운 나무 중 하나였다. 초당림에는 현재 높이 40m 이상의 목백합 30만 그루 가량이 자라고 있다.

초당림의 성공으로 산림청은 2006년 권장조림 주수종으로 '목백합'을 선정해 매년 전국적으로 1000㏊ 이상씩 심고 있다고 한다.


 


'초당육림 40년’의 애환 
김기운옹은 2007년 펴낸 ‘초당육림 40년’이라는 책에서 초당림에 쏟아부은 40년 세월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에 따르면, 조림 초기엔 자갈밭이라는 악조건과 가뭄, 한파 때문에 나무의 절반이 죽는 등 시행착오를 겪었다.

김기운옹은 자갈밭에 구덩이를 판 뒤 흙을 넣어 나무뿌리가 자생력을 갖도록 하면서, 매년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가뭄, 한파로 나무가 죽은 땅엔 다른 수종으로 대체했다.

정부도 도왔다. 산림청은 임산물의 운반을 위한 길인 ‘임도’를 설치했고, 자금을 지원했다. 강진군은 기계와 비료를 지원했고, 병충해 구제에도 나섰다.

그러나 산불이 나면 이 같은 수고는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초당림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기운옹은 당초에 나라사랑과 애림사상으로 숲을 가꾼 것이라 불이 나더라도 ‘또 나무를 심으면 되지’라며 위안했지만, 수차례에 걸친 대형 산불로 까맣게 탄 숲을 보자 ‘육림은 미친 짓’이라고 후회를 하기도 했다.

1977년 2월의 산불로 10㏊가 불탔고 이듬해엔 2㏊가 재가 됐다. 인근 논두렁 태우기의 불씨가 옮겨 붙어 발생한 인재였다. 2000년 12월엔 전기합선으로 1㏊가 불탔고, 이듬해 4월엔 담뱃불로 산불이 나 25㏊에서 자라던 30년생 편백나무와 삼나무 2만5000그루가 재가 됐다.

불이 날 때마다 인근 마을주민과 예비군, 공무원이 솔선해 진화에 나섰다. 초당림에선 불이 난 자리에 ‘화재발생지 표석’을 설치해 방화사상을 고취하고 있다.


 


현재 인공조림지인 초당림에는 편백 132만 그루, 테다송 105만 그루, 목백합 30만 그루 등 17종 500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숲에 난 임도만 50㎞이다. 이는 남한 산림의 8000분의 1을 차지하며, 인공조림으론 경기 포천시에 있는 국립수목원에 이어 국내 두 번째 규모다.

숲속의 그린오션, 아름다운 초당림 
김기운옹은 초당림의 가치를 100% 활용하기 위해 초당림에 다양한 시설을 세웠다. 1991년엔 초당림 안에 백제약품 연수원을 건립했다. 축구장을 갖춘 연수원은 주위를 감싼 산림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 체험과 산책코스로 제격이다. 연수원 입구엔 100여명 이상을 수용하는 임업전시관과 교육장도 갖췄다.

2004년엔 ‘초당제재소’를 설립해 초당산업의 운영경비 중 일부를 충당하고 있다. 목백합 등을 1차 가공해 수요자들에게 직접 공급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산림감시와 나무솎기, 버섯작업 등의 일자리도 제공하고 있다.

초당림의 운영을 담당하는 초당산업과 강진군은 매일 수십 명의 인력을 동원해 초당림을 가꾸고 있다. 매일 20~30명이 기계로 나무를 심고 있고, 강진군의 희망 근로프로젝트에서 5~6명이 나와 제초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밖에 초당제재소에서 4~5명, 초당연수원에서 1~2명이 일하고 있다.


 


초당림의 관리와 제재소를 맡고 있는 김영씨(48)는 “현재 초당림은 표고버섯 재배로 1억5000만원과 목재생산으로 7000만원 등 2억5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내고 있다”면서 “지금은 산림 조성의 기초단계가 끝난 단계로 흑자 경영엔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목백합 등이 상업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김씨는 “조림 초기에 심은 50만 그루 테다송 가운데 대부분이 30m이상의 크기인데, 이만한 나무 한 그루 값은 15만원 정도”라며 “테다송, 목백합, 편백나무 3종 267만 그루만 계산해도 4000여억원의 가치를 지녔고, 평당 3원에 구입했던 임야는 현재 공시지가로만 3000배 이상 상승했다”고 말했다.

산림청과 강진군은 2005년 전남도산림환경연구소와 함께 초당림 중 5㏊를 ‘산림시업방법개발 실연사업지’로 지정해 편백나무 5100그루를 키우고 있다. 우량목재를 생산하기 위해 편백나무와 함께 자라던 리기다소나무를 솎아낸 뒤 편백나무의 생장을 촉진시켰다.


 

치유, 체험, 소득이 있는 '초당경영숲' 
강진군은 지난해 초당림을 ‘경영모델숲’으로 선정했다. 칠량면 명주리와 용운리 일대 900㏊를 올해부터 2011년까지 총사업비 30억원을 들여 개발하는 사업이다. 경영모델숲이란 ‘산림의 생태적·경제적·사회적 기능을 충족하기 위해 임야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관리, 이용하는 사업체계’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초·중고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교실을 운영하고, 가족 단위 체험학습을 위한 체험시설과 전망대, 레포츠 코스를 개발한다. 또 숲소득을 거두기 위해 버섯류를 재배하고 곤충 및 산약초 판매장도 운영한다.

강진군의 한상춘 산림녹지팀장은 “초당림은 강진군 전체 임야의 30분에 1을 차지하며, 40년간의 조림경영 노하우가 있는 곳”이라며 “강진군의 경영모델숲 계획은, 지금까지 가꿔온 인공조림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경제적 가치를 높이며 지역주민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팀장은 이어 “초당산업과 함께 임도를 이용한 트레킹코스와 숲관련 교육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며 “생명의 숲을 통한 치유와 산림욕 체험, 상록공원 등 테마숲과 휴양림의 조성 등을 추진해 소득이 있는 경영숲을 만들어 산림의 부가가치를 높일 방침이다”고 설명했다.

강진군측은 3년간의 마스터플랜을 마무리하면 연매출 10억원 이상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초당산업에서도 강진군의 계획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초당산업의 한 관계자는 “군청의 계획으로 관광객이나 체험객이 늘면 산림보호나 화재예방에 취약해지겠지만, 수익사업 창출로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환영했다.

정부의 숲가꾸기 정책과 한 사업가의 ‘애림사상’이 만나 불모지가 경제림으로 변모했다. 온갖 시련을 딛고 숲가꾸기를 몸소 실천한 초당산업과 강진군의 예에서 보듯이, 조림의 녹색기술이 '녹색성장동력'의 한 모델로서 중요한 탄소흡수의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책기자단 박주익 cheongja@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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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오늘 한 그루의 나무에 투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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