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섬을 가다

한많은 아리랑 고개, 금갑도

샘물문화 2022. 10. 25. 11:09

한많은 아리랑 고개- 금갑도

 

현재 공식지명상으로 금갑도는 없다. 1914년 토지조사사업 이전에는 존재했으나 일제에 의해 접도(接島)로 바뀐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446년 처음 기록된 조선 세종 때부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그리고 유배지로 조그마한 섬이지만 조선왕조실록에 166번 언급될 정도로 대단한 요충지였다. 우리 키우리산악회에서도 몇 번 접도(금갑도) 산행을 한 적이 있다.

바다로 남해를 거쳐 완도를 지나 서해안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고 진도 울돌목 벽파진으로 가거나, 조도로 빠져나가는 길목의 갈림길 상에 위치하여, 인천 강화도 한양 도성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한다. 그래서 왜적의 침입을 막고자 군사를 두어 항상 방비를 하던 곳으로 남망산(南望山)이라 불리는 망대도 설치되었고, 특히나 전라도의 대부분의 섬들은 대명률에 따른 위리안치(圍籬安置)에 적합한 탱자나무가 많이 있다는 이유로 유배지로 선정되었다.

진도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고려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하여 35년을 항전한 이후 섬의 기능과 역할에 주목하게 되었고, 몽골의 부마국이 된 고려왕실을 인정치 못하고 왕온을 새로운 왕으로 모시고 진짜 고려라고 하면서 몽골과 야합한 세력에 결사항전을 외친 항몽세력들이 진도로 옮겨와 수도로 결정한 것이다. 강화도처럼 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몽골과 야합세력들의 집요한 공격에 진도는 함락되고 그야말로 초토화 되었고 공도화(空島化)가 진행되었다. 그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아픔과 슬픔은 산자들의 유산으로 전승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의 한()의 노래로 승화되었다.

한국의 3대 아리랑이라 하면 경남 밀양, 강원도 정선, 그리고 전라도 진도를 말하고 있다. 3곳의 공통점은 다 유배지라는 점이다. 밀양이나 정선도 험지이지만 진도는 섬이었다. 대명률에 따른 최악 범죄자에게 내린 3,000리 유배를 한반도에서는 이룰 수 없게 되자 섬 하나를 건너면 1,000리로 계산하여 형을 집행했으며 반드시 수군진이 있는 곳만을 유배지로 하여 통제했다.

그래서 한이 서리게 된 것이다. 억울한 유배와 그리고 이별의 고통, 가족과의 단절, 빈곤한 생활, 소외와 핍박, 통제와 차별 등으로 신분제 사회에서 최하층민으로 전락되어 인간적 서러움을 가장 많이 받고 있던 곳에서 나온 절규의 노래가 아리랑으로 승화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양반들은 그런대로 괜찮으나 일반 하층민들은 그야말로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고 극한 상황에 내몰려 살았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밀양아리랑은 양반의 문란한 성폭력으로 희생된 여성의 비극을 승화시켰고, 정선아리랑은 전란과 폭정으로 고달픈 양민들의 노래가 승화된 것이다. 밀양과 정선, 그리고 진도도 일제를 거치는 동안 사상이 담긴 노래는 탄압됨에 따라 남녀 관계를 소재로 한 가사가 포함되어 불리어지고 오늘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의 가락으로 자리맺김하게 되었다.

금갑도를 가려면 지금도 굽이굽이 산길을 휘돌아가야 한다. 유배를 가거나 유배인을 면회하려고 금갑도에 가려면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야 했을 것이고 또한 님을 두고 뒤돌아오는 걸음은 눈물로 얼룩졌을 것이다. 같이 하룻밤을 자고 나서 문앞을 보니 새로운 고개가 생긴 것 같은 서글픔을 느끼고 그래서 첫 가사가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진도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문경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과서에 실린 문경이라는 단어를 문전으로 고치자고 한다. 그러나 교과서측은 1930년 진도아리랑을 채록한 기록에 문경으로 나온다는 이유로 고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일제의 신작로를 삼국통일 유산으로 왜곡한 과거 교과서에도 실렸던 나제통문(羅濟通門)’이 생각난다.

진도아리랑에 나오는 문경은 경상도 문경(聞慶)이 아니라 문경(門景)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사에 한자로 문경(門景)을 배서해주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라고 본다. 또한 문전(門前, もんぜん)’1930년대에는 일본식 발음 몬젱으로 보아 잘못 채록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학교를 핵교, 경찰을 갱찰, 문전을 문겡으로 발음할 수도 있는 전라도 진도의 사투리를 채록하는 사람이 문겡문경으로 했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님과 하루밤을 지내고 나서는 문 앞에 커다란 산이 앞에 있고 그 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가야 한다는 아득함에 남아있는 사람이나 가야하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눈물의 고개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전(門前)에 보이는 새로운 고개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는 아픔과 슬픔을 변하는 한()의 진도아리랑이다.

사람이 살면은 몇백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까마귀 검으면 속조차 검냐, 겉몸이 늙으면 마음조차 늙냐”, “소리따라 흐르는 떠돌이 인생, 첩첩히 쌓은 한을 풀어나 보세.”

지금의 금갑도와 접도도 어떻하면 좋을까? 왜적을 막는 항일 요충지가 되는 것이 두려워 일제가 접도로 이름을 바꾸지(創地) 않았을까? 진도아리랑의 첫소절 문경이 맞느냐 문전이 맞느냐 하는 논쟁처럼 앞으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구부구부가 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금갑도가 또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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