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를 세계적 자산으로 승화시킨 안좌도
2019년 11월 23일 홍콩에서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가장 값비싼 작품이 나왔다. 김환기 화가의 만년의 대작 <우주>(254×254㎝)가 131억 8,700만원에 팔린 것이다. 우리역사상 서양화 작품이 100억원 넘는 가격에 세계시장에서 경매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인에게 팔려나간 것으로 알려졌던 그 그림이 『서울경제』에 의하면 현재 소장가는 글로벌세아그룹의 김웅기 회장으로 2022년 7월 12일 확인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가장 비싸게 경매된 한국 미술품 10점 중 9점이 바로 전라도 안좌도 출신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1913-1974)의 작품이다.
김환기는 전라도가 만들어낸 인물이다. 이유 없는 결과는 절대 없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주는 진리이다. 김환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그를 둘러싼 전라도의 인간과 자연이 그의 작품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전라도를 추상적으로 표현하여 인류보편적 가치로 승화시켰다.
프랑스와 미국에 유학할 때도 그는 “여기에서 배우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자신의 가치와 철학을 지키면서 전라도를 세계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1957년 9월 프랑스 니스방송국과 인터뷰에서 가장 그리워하는 한국적인 풍경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독히 푸른 하늘과 바다”라고 하면서 그가 나고 자라고 영향을 받은 전라도 안좌도임을 분명히 했다. “흰 수건을 적시면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바다”를 그의 색으로 말했다. 추사 김정희가 말한 양반들의 논리를 강요하는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이 가득한 그림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세계의 어느 사람이 보더라도 카타르시스(淨化)를 느낄 수 있는 예술을 그는 하고자 한 것이다. 그것이 통한 것이다.
그가 태어나 뛰어놀고 서울과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시간날 때마다 내려와 충전하던 곳, 그리고 그의 작품 곳곳에 녹아있는 전라도에 대한 오만가지 회상이 널려있는 안좌도 바다가 그를 푸르게 물들였다. 읍동선착장에 바라보는 둥글둥글 고만고만 하게 떠있는 듯 보이는 섬들과,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푸른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안좌도 곳곳에 산재한 둥근 고인돌과, 억척스럽게 가난을 이겨내는 전라도 사람들의 모습이 김환기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김환기는 1913년 전라도 안좌도 읍동리에서 3남5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백두산에서 소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을 정도로 당시의 안좌도에서 부잣집에 속했고, 그 아래서 김환기는 초등학교를 안좌도에서 마치고 1927년 서울 중동중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리고 부유한 집안의 장남답게 자비를 들여 1931년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 그리고 20살 때인 1933년 니혼대학교 예술학원에 진학하여 미술교육을 체계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일본에 자비로 유학한 그는 부담 없이 공부하여 실력도 일취월장, 1935년 일본미술대전인 이과전에 <종달새 노래할 때>라는 작품으로 입선하였다. 이 작품은 한복을 입은 여인이 달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걸어오는 모습, 즉 그가 나고 자란 안좌도의 여인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달항아리를 한국적인 것, 나아가 고향을 상징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무수한 항아리들이 생생하게 떠올라 뚝 고향이 그립듯이 그런 생각에 젖는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는 달항아리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그는 달항아리를 모으는데 많은 돈을 탕진하기도 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 가장 전통적인 것, 가장 자신을 대변하는 것으로 달항아리를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애착을 가지고 모았던 달항아리가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모두 파괴되어 버리자 그는 달항아리의 집착에서 벗어나 달과 원형적인 둥그스런 추상에서 그는 근원을 다시 찾기 시작하였다. 다 안좌도에서 그가 보았던 자연이었다.
“내 그림은 동양사람의 그림이요, 한국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것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렬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라고 그는 표현한다. 그의 말 그대로 강렬한 민족의 노래, 다시 말해 전라도의 노래인 것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라도 안좌도 출신이고 전라도 안좌도는 그의 예술혼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안좌도에서의 추억과 놀았던 기억들, 나아가 푸른 바다와 산과 섬과 달 등등 자연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말하지 않아도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감동을 전해주는 카타르시스의 예술로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안좌도에 대한 역사기록은 아쉽게도 많이 없다. 다만 추정할 수 있는 것으로 김환기가 어릴 적 뛰어놀던 읍동선착장 바로 맞은편 팔금도에 대한 기록으로 『조선왕조실록』 1892년 2월 10일에 “사람이 적으며 누더기 옷을 걸치고 몹시 가난하게 사는데 관속들이 여러 가지로 침해하고 괴롭히기 때문에 흩어져서 떠돌아다니며 의탁하여 살 곳이 없다.”라고 했다. 불과 김환기가 태어나기 20년 전의 기록이다. 척박한 섬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주변의 전라도 사람들이 김환기의 눈에도 항상 가득했을 것이다.
안좌도는 보면 볼수록 그 값어치가 느껴지는 예술의 섬이다. 현재는 천사대교가 개통되어 항구는 한산해졌지만 지금도 읍동선착장에서 뛰어노는 어린 김환기가 보이는 것만 같은 안좌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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