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업체탐방

주식회사 서산

샘물문화 2019. 8. 14. 16:58


 ()서산 염홍섭 회장

주소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산단4번로 143 전화: 062-950-5110



흄관, 전주 등 독보적 콘크리트 전문업체


 

염홍섭 회장, 지역경제계 큰어른이며 기부천사

구순(九旬)의 나이에 골프 18홀을 1주일이면 서너 차례 끄떡없이 돌 수 있는 에너지, 5개 회사의 회장으로 현장 업무를 직접 처리하고 하남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 국조숭모회 이사장 등 12개 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광주 경제의 산 증인, 염홍섭 ()서산 회장을 찾았다.

물론 이들 외에도 그동안 5년간의 임방울국악진흥재단 이사장, 9년간의 광주경총 회장과 한국산학협동연구원 이사장, 10년간의 kbc광주방송 회장, 15년간의 고향사랑회 이사장 그리고 100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 하남산단 3년 임기 이사장을 11차례나 연임했을 정도로 30여 곳의 굵직한 이름만 들더라도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바삐 움직였는지 알 수 있다.

염 회장이 건강에 있어서만큼은 40~50대도 부럽지 않은 빛을 발하는 것은 젊은 시절부터 일에 대한 긍정적인 마인드가 뿌리깊게 자리했기 때문이다.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몸이라는 말이 바로 염 회장을 두고 한 말이라 여겨진다. 이런 마인드로 남보다 빨리, 남이 못하는 일을 해내는 것이 염홍섭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지역문제에 대해서도 누군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서로 돕고 해주는 것이 지역발전을 가져오는 일이다고 잘라 말한다. 기업이 돈을 버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쓰는 일도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불가능을 성공으로 바꾸는 열정

()서산은 1974년에 설립됐다. 45년간 콘크리트 전문업체로 끊임없는 설비투자 및 기술개발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지닌 고품질의 제품을 양산해 왔다. 1975년 원심력철근콘크리트관 KS표시 인증 취득을 시작으로, 2017년까지 17개의 KS표시 인증을 취득했다. 특히 1997년 전 품목 ISO9001인증 획득을 통해 체계적인 품질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광주·전남지역의 동종업계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염 회장은 나주 출신으로 스무살 청년 때 논 100마지기 살 돈을 벌겠다는 뚜렷한 목표로 고향을 떠나 광주로 올라왔다. 맨 손으로 광주에 올라온 염 회장은 충장로에서 휘장제조업체를 운영하던 형님으로부터 사업수완을 익힌다. 불철주야 노력한 덕에 10년 뒤에는 광주 최초의 휘장업체 불로당을 형님에게서 넘겨받는다.

염 회장은 이때부터 하는 사업마다 운이 많이 따랐다. 하지만 운에 맡기지 않고 불가능한 일을 성공으로 이끌어내는 뜨거운 열정을 뿜어냈다. 19603.15부정선거로 일컫는 제4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자유당 정권에서 투표관리를 한다는 목적으로 완장을 제작 의뢰했다. 당시에 이 완장은 반공이라는 글씨를 써넣었는데 전국에 필요한 수만개를 며칠 동안 밤새 만들어 납품했다.

부정선거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염 회장은 이때 이제 나는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자유당에 협조했다는 빌미가 잡힐 것이 걱정됐던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전남도내 각 시.군의 반과 리/면에 공급되는 깃발을 24천개나 제작했다. 그런가하면 마을표지판도 제작해 납품하는 등 관납 일을 통해 짧은 기간에 경제적 기반을 다졌다.

1969년 여천공단 준공식을 앞두고 공단 내 차선을 맡아 그렸다. 이런 실적으로 광주-목포간 도로의 차선 도색도 최초로 수주 받았다. 차선 도색 업종에서 대형공사를 잇달아 받으면서 기반을 닦았다.

더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대인광장에서 백운광장까지의 도로 개통식이다. 예정에 없던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다고 하자 전남도가 발칵 뒤집혔다. 대통령 경호 문제로 10일 안에 도로 양쪽에 가드레일을 설치해야 하는 긴급입찰공고가 떴다.

이는 3개월 작업 물량이었다. 이를 위반하면 1일에 10% 지체상금을 변상해야 했다. 이 사업도 아무도 응찰하지 않아 염 회장이 해내겠다고 전남도에 말했다. 부산파이프에서 자재를 3일간 준비하고 남은 1주일 동안 비를 맞아가며 완수했다. 당시 도청 담당국장은 날마다 현장을 찾아와 걱정어린 눈으로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무차입경영으로 중견 향토기업 육성

이렇게 해서 염 회장은 1970년대까지 안전산업사 및 가구업체 등 크고 작은 6개 업체를 운영했다. 1980년대초 하남공단에서 콘크리트 구조물 제조업인 광명공업사를 창업하면서 이전의 6개 업체는 함께 일했던 종업원들 가운데 역량 있는 이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2개 정도만 사업을 꾸준히 해 성공했고 4개는 사업을 확장하지 못한 채 오래지 않아 문을 닫아 안타까웠다.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가장 철칙으로 삼은 것이 무차입 경영이다. ()서산을 인수하고 빚을 내 규모를 확장하다가 자금경색으로 대출금 상환에 애를 먹었다. 그 후 염 회장은 절대로 빚을 내지 않는 경영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운영하여 오늘날 튼튼한 중견 향토기업 ()서산을 일구었다.

염 회장은 구순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지나고 보니 실수를 많이 했다고 말한다. 또 큰 걱정, 작은 걱정을 하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업계든 고객이든 누구에게나 욕먹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염 회장은 어떤 일이든 불가능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남보다 빨리 남이 못하는 일을 해내는 사업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서산을 이끌어 오면서 투명경영 및 성실납세로 인한 대통령표창, 산업포장, 동탑산업훈장, 국민훈장, 석류장, 창업경영자 대상 수상 등 수많은 훈장과 포장을 수상했다.

물론 장학활동도 열심히 했다. 지난 2013년에 직접 설립한 성암복지문화재단의 기금을 60억원 넘게 조성하고 그동안 4억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급했다. 또 광주시 소방공무원 및 자녀들의 장학단체인 녹수장학회 이사장을 맡기도 했고, 광주은행장학회, 빛고을장학재단에도 관여하여 지역경제인들에게 일일이 전화하는 등 기부천사라 해도 말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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