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림산업개발(주) 허영호 대표이사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설죽로 416 삼각골드클래스 상가2동 4층
⚫전화: 062-526-9331
부동산 신화 쓰고 AI.신소재 엔젤투자 계획 중
전국에서 9번째 패밀리아너소사이어티, 장학재단 설립이 꿈
이웃사랑의 리더 허영호 대표
창업 20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올해는 미림산업개발(주) 허영호 대표에게 참으로 기쁨이 가득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이웃사랑의 리더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허 대표는 그동안 여러 단체의 임원 또는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봉사를 몸으로 실천해왔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지속적으로 지원해왔다. 이런 그의 활동과 정신이 가치 있게 평가되어 대통령을 비롯하여 광주광역시장, 경찰청, 농협, 대학, 정부 부처, 장관 등 여러 기관으로부터 표창장, 공로패, 감사패 등을 40여개나 받았다. 그만큼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2017년에는 저소득 후원·지역인재 양성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나눔 국민대상’을 수상하였고 지난 11월 5일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허 대표는 평화통일 기반조성과 북한 이탈주민 지원사업 및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 등에 노력한 사회봉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오랫동안 소외계층 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펼쳐왔는데 전국에서 처음으로 북한이탈주민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 지원사업을 펼쳤다.
허 대표는 “가진 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기업경영을 통해 얻은 수익이나 재산의 일정 부분을 사회 환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살아있는 한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봉사활동을 쉬지 않고 해나가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봉사활동, 기업경영 모두 부지런함이 천성
허 대표는 특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14년 전남12호로 가입한 데 이어 이듬해는 아내가 전남 27호로 역시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여 전남 ‘부부1호 정회원’이 되었다. 또한 딸 허고은 양이 전남77호, 아들 허민석 군이 전남90호로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함으로써 전남 최초, 전국 9번째 ‘패밀리아너’가 되기도 했다.
허 대표는 1990년 전남대를 졸업, 공무원도 하고 직장도 다녔다. 2000년부터 직장생활을 접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여 미림산업개발(주)을 설립했다. 근린생활시설을 매매하고 임대아파트 분양전환사업, 주택건설 대지조성, 부동산 시행투자 등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허 대표는 급변하는 분양시장의 흐름을 철저하게 검증하고 분석하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내는 역량으로 부동산시장에서는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미림산업개발은 그동안 크고 작은 프로젝트와 사업을 하면서 성공신화를 하나하나 쌓아 올려 오늘날 건실한 기업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결과이다. 또한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사회활동을 꾸준히 해오면서 사업이 번창하게 되어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허 대표는 “세상이 바뀌어도 한 가지 바뀌지 않는 게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 부지런하기를 제일로 한다면 어려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인생에 성공하려면 일을 할 때는 열정을 다하고 강한 호기심을 가지며 꾸준한 독서로 많은 간접경험을 쌓아가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허 대표 자신이 봉사활동에서 부지런하기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미림산업개발도 성공의 신화를 이룩하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시장에서 부지런히 뛰고 있다는 것이다.
터닝포인트, “학업에 대한 열망”
그는 성균관대 사회사업학과에 입학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뜻에 따라 전남대 농학과를 진학하였고 1990년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40세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라는 인생목표를 만들었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전문경영자로 이론적인 무장을 위해 전남대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을 입학했다. 2005년의 일이다. 당시 지도교수가 박성수 원장이었다. 원장님과의 인연으로 키우리에 가입하게 되었고 키우리 봉사회 창립멤버로 사무국장과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대학원 생활 동안 원장님께서 평소 강조하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더 노력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6년 석사과정 중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위해 전남대 발전기금으로 1천만원을 기부한 것이 어찌보면 외부에 알려진 기부의 첫 시작이었다.
대학원 진학 후 그의 삶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그것이 오늘의 ‘허영호’를 만들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석사과정을 졸업하는 동시에 2007년 박사과정을 진학하였다. 그의 목표대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생각에 박사과정을 밟았다. 수업을 듣고 논문을 쓰는 바쁜 대학원 생활이었지만 천성처럼 몸에 밴 그의 봉사정신은 쉼이 없었다.
다문화가정, 장애인 시설 등에서 환경미화, 후원금 전달, 식사봉사 등을 시작했다. 또 보육원 어린이들의 목욕봉사, 북한 이탈주민들의 멘토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현장에서 접하게 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였다. 그런 가운데 전남대에서 2012년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다시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로서 성공 신화를 써가고 있다. 그에게 이제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장학재단을 설립해 꿈을 키우는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결핍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광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추진해온 미래 전략산업인 인공지능(AI), 신소재 분야에 대한 엔젤투자를 통해 제조업에 진출하는 일이다.
허 대표는 “제조업이 수익성은 크게 떨어지지만 사회공헌이라는 사명감, 일자리창출이라는 시대정신을 새롭게 만들고 싶다”면서 “지역에서 활동하며 알게 된 지인들과 협력, 협업을 통해 지역발전을 위해 초심으로 꾸준히 미래를 개척하는 삶을 살고 싶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