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홍도
섬 “홍도”를 널리 알린 노래 “홍도야 울지마라”는 우리의 인생사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세상을 달관한 전라도의 애환을 노래한 것 같은 느낌이다. 오빠를 공부시키기 위해 기생이 되어야만 했던 홍도는 오빠친구인, 필자와 이름이 같은 ‘광호’와 결혼하지만 과거 때문에 버림받게 되고 설움에 복받쳐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이 몸바쳐 공부시킨 오빠의 손에 의해 잡혀간다는 일제강점기 1936년에 발표된 연극을 노래로 만든 것으로 ‘홍도’를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신라의 골품제로부터 시작된 우리 한반도의 노예제도는 무려 1,500년의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자국민을 노비로 삼는 야만적 제도’로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케 한 ‘동방노비지국’이었다. 그러한 노비는 상속, 매매, 증여할 수 있는 물건(口)이었고 벗어날 길이 거의 없는 천형과도 같은 굴레였다.
홍도는 목포에서 약 116km, 흑산도에서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우리나라 서해 먼바다에 위치한 5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조그마한 섬이다. 흑산도와 더불어 장보고 청해진제국 시절의 중간항로로서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으로 들고나는 관문에 자리하고 있다.
언제부터 홍도(紅島)라고 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해방 이후에 홍도라 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목에서 파도가 잠잠해지고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는 대풍도(待風島)라 했다가 조선시대에는 홍의도(紅衣島)라고 했다. 바다 위로 솟아난 바위 절벽이 석양의 태양빛을 받아 온 섬이 붉게 빛난다고 하여 그리 불렀다고도 한다. 암튼 우리의 애환을 대변하는 섬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홍도 연해에는 질 좋은 미역이 많이 자라 이를 무단채취하면 곤장 100대에 처했다는 조선왕조실록(1413)의 기록도 있다. 그 미역의 근저에는 고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기를 낳은 후 미역을 먹는 습속이 생긴 것도 바로 고래에서 연유한다. 고래가 새끼를 낳거나 혹은 몸이 아프거나 하면 미역을 뜯어먹고 또한 미역이 자라는 곳에서 해산(解産)을 한다는 것이다.
당나라 서견의 『初學記』(720년경)는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 미역을 뜯어 먹어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사람(高麗人)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인다.”고 적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지금도 해산 후에 미역국을 먹는 습속이 생겨난 연유를 말하고 있다. 또한 『고려사』 983년의 기록에는 “백제의 땅은 고래가 사는 바다를 끼고 있다(百濟遺封, 地控鯨津)”로 표현하고 있다.
홍도의 등대는 1931년 2월에 설치되었다. 홍도에 등대가 시급하게 그렇게 필요하지도 않았지만 일제는 일찍이 홍도에 등대를 설치했다. 그 이유가 뭘까? 바로 일제의 전쟁물자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고래를 잡기 위해서였다. 겉으로는 자국함대의 안전항해라고 했지만,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전쟁물자가 부족해지자 온갖 명목으로 한반도를 수탈한 일제가 홍도에 등대를 설치하고 중간항로로서 증기선에 목탄을 제공하는 숯가마가 1940년대까지 운영되었다.
고래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은 17세기부터이다. 고래기름은 청정에너지로 서구 유럽 대도시의 등불을 밝혔고, 정밀 기계를 돌리는 윤활유로 활용되었다. 고래수염과 각종 부산물들은 마아가린과 글리세린, 양초, 비누, 합성수지, 화장품, 향수, 의약품, 호르몬제, 여성 내의의 코르셋에 이르기까지 500여 가지 공산품의 원자재로 활용되었다. 서구 열강들은 고래자원 확보를 위해 세계의 바다를 누볐다. 일본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주민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본만의 잔치였다.
고래는 지구 역사상 최대의 동물이란 이미지로부터 서양인들은 '바다의 괴물'이란 뜻으로 케토스(Ketos)라 하였고, 우리 조상들은 큰고기라는 뜻으로 경(鯨)이라 하였다. 경의 우리말인 ‘고래’는 19세기 초에 조선 실학자 서유구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 처음으로 나타나고,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경어(鯨魚)의 속명을 ‘고래어(高來魚)’라 하면서 “빛깔은 칠흑색이고 비늘이 없다. 길이는 10여장 혹은 2, 30장이다. 흑산 해중에도 이것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조선사회는 중앙집권적 왕권봉건사회로 더구나 진영논리만을 강요하는 성리학의 득세로 인하여 가치 있는 자원을 국력신장에 활용치 못하였고, 오히려 고래를 못된 것으로 묘사하였다. 고래가 작은 연약한 물고기를 수없이 잡아먹는다고 하여 일반 양민이나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경예(鯨罹: 숫고래와 암고래)”라 하여 멸시하였고, 왜구를 바다를 흔드는 고래의 횡포로 비유하고, 죄인의 얼굴에 문신을 자자하는 것을 “경면(鯨面)”이라 하였고, 나졸들의 횡포와 관리의 비행을 “경란(鯨亂)”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래는 한국사회에서는 대접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홍도는 다도해와 어우러진 쪽빛 바다에 어족자원도 풍부하며 지금 고래는 없지만, 홍어가 많이 잡히는 곳이기도 하며,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해상경관과 환상적인 낙조를 보기 위해 홍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명품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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