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섬을 가다

노벨평화상, 하의도

샘물문화 2022. 10. 14. 16:22

노벨평화상, 하의도

 

우리에겐 꿈이었다. 특히나 전라도에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라도는 그 꿈을 현실로 바꾸었다. 김대중이 해냈다. 전라도 천년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기억되어야 할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누구나 꿈꿀 수 있지만 아무나 해낼 수 없는 꿈, 인류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에게 주는 세계가 인정하는 위대한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전라도 하의도가 배출한 것이다. 사건이다. 전라도가 품은 역사와 가치가 그 빛을 발한 것이다.

김대중은 하의도의 형상이 달팽이가 기어가는 모습이라고 했다. 그가 태어난 하의도 후광리는 달팽이 촉수에 해당된다고 했다. 천천히 가지만 세상을 바라보면서 흔들리지 않고 간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연꽃이 물 위에 떠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하의라고 한다지만 하의도는 인류보편적 가치를 말없이 실행한, 달팽이의 움직임처럼 인류의 평화와 진보를 위한 위대한 전라도의 발걸음을 대변해주고 있는 곳이다. 세계 어느 역사에서도 찾을 수 없는 350년의 생존권 투쟁을 해온 위대한 역사를 가진 섬이 하의도이다.

 

 

하의도에 도착했다. 항구에 내려 보니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배출한 섬이라고 한다. 너무나 겸손한 소리를 하고 있다. 대통령을 배출한 섬이 아니라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한 섬이라고 해야 한다. 김대중을 압박하고 죽이려고 한 박정희나 전두환도 다 대통령이었다. 일부 지역 사람들은 기계적 등가론으로 김대중이나 전두환이나 다 똑같은 대통령이라고 한다. 차별하는 것은 지역감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치로 보면 그 위상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전라도를 대변한 김대중은 전라도 지역에서는 우상이었다. 김대중이 손목만 잡아도 당선된다는 지역이 되었고 또 다른 쪽은 발목을 잡으면 당선된다는 지역이 되었다. 존경을 나타내는 선생님도 다른 곳에서는 슨상님으로 변해 있었다. 노벨상을 돈을 주고 샀다느니 로비를 해서 받았다느니 하면서 그 가치와 품격을 깎아내리는데 여념이 없었다. 눈뜨고는 봐줄 수 없는 폄훼가 이루어졌다. 그런다고 그 가치와 위상이 변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진영논리로 평가가 갈렸다. 2022년인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과거 청야입보와 공도정책 때문에 거주할 수 없었지만 임진왜란이 끝난 1600년대에 들어서자 조정도 섬에 주민거주를 인정했다. 땅이 없거나 양반의 수탈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섬에 들어와 땅을 개간하거나 간척하면서 살고자 하였다. 이 때 하의도도 사람이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후 인조는 대명의리론과 패륜이라는 명분으로 광해군을 뒤엎는 쿠테타에 성공했다. 그리고 1624년 인조는 선조의 외동딸 정명공주를 결혼시키면서 반정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 규정을 벗어난 엄청난 규모의 집과 토지를 제공했다. 이 때 하의도에 만들어진 농토를 정명공주에게 하사해 버린 것이다. 도서민들은 어쩔 수 없었다. 봉건왕권사회에서 모든 토지의 주인은 왕이었으니 정명공주에게 준다는 왕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하의도의 땅을 경작하여 세금을 정명공주에게 바쳤다. 땅주인에서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부마 홍주원의 집안도 더불어 발호했다. 정명공주가 죽자 하의도의 땅을 돌려달라고 했으나 정명공주의 부마였던 홍주원 일가들이 자기들 소유권을 주장하고 지속적인 수탈을 자행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도 하의도 주민들의 토지반환 요구가 지속되자 풍산홍씨들은 이완용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소유권을 넘겨버렸고, 해방후 미군정은 일본 적산재산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신한공사를 내세워 하의도 주민들의 소유권을 박탈하고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고 저항하면 폭도로 몰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봉권왕권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미군정을 겪는 동안 하의도의 주민들은 온갖 고난과 수탈을 당했으나 생존권을 위한 토지를 돌려달라고 하는 외침만은 변함이 없었다. 섬놈이라는 천시를 받으면서 역도로 몰리고, 불령선인으로 몰리고, 폭도로 몰리는 등 모진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투쟁을 전개한 결과 하의도의 토지소유권을 되찾았다. 1623년에 빼앗긴 토지소유권이 370년이 흐른 1994년 소유권 이전을 마지막으로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갔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나긴 싸움이었다.

 

 

이러한 하의도의 주인정신과 보편적 가치를 알게 모르게 몸으로 체득하면서 어린 시절을 섬에서 보낸 김대중이었다. 부친은 하의도에서 꽤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들의 학업을 위해 전 재산을 처분하여 목포진성 아래 지금의 항동시장 부근에다 영신여관을 열고 김대중을 뒷바라지 했다. 그러니 그 헌신은 헛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역경과 압박 속에도 굳건히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370년간이나 지속해온 하의도 사람들의 정신이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그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디에 이런 싸움을 했던 곳이 있는가? 없다! 오로지 전라도 하의도 외에는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다. 인류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전라도의 위대한 여정이었다.

목포 삼학도 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김대중은 “나를 공산주의자라, 지역감정주의자라 매도했던 사람들이 부끄러워 할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이루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책무이자 김대중 그가 하고자 했던 바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가 한 일이 바로 김대중을 매도했던 사람들이 부끄러워 할 날을 만드는 것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인류보편적 가치의 실현은 멀리 있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 바로 김대중을 매도했던 사람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길에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전라도의 킹메이커이자 청해진제국의 창설자 장보고와 더불어 앞으로 천년 전라도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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