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약품(주) 이달호 대표
●주소: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방울대로825번길 60-18(쌍암동)
●전화 062-682-8158
믿음과 신뢰로 성공스토리 써 나갔다
겸손과 기부로 아름다운 인연 만들어가
헝그리정신으로 살아남았다. 믿음을 주는 적극적인 자세로 제약업계의 신뢰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오늘 성공의 스토리를 새롭게 써나가고 있다.
탄탄하게 기반을 다지게 된 것은 많은 분들의 격려와 성원 덕분이다. 이처럼 항상 겸손하게 세상을 마주 하겠다는 것이 이달호 대표의 생각이다.
50대 중반에 이른 안성약품(주)의 이달호 대표에겐 40대는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는 그 때를 회상하면 “정말 힘들었다”고 말한다. 당시에 10억여원의 손실을 겪으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약업체 본사를 찾아가 “시간을 주면 꼭 갚아나가겠다”는 말을 하며 설득했던 것이다.
다행히 이런 진심이 받아들여졌고 오늘의 자리에 있게 됐다. 그런 때가 있었기에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생 후반기에는 열심히 일해서 벌고 사회의 그늘진 곳에 기부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기로 했다.
‘약’만 보고 들어갔더니 농약상
이달호 대표는 원광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중 의무경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의 한 경제신문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몇 년간 열심히 뛰었다. 기업현장을 방문하고 성공한 CEO를 만날 때마다 그들로부터 오히려 배웠다. 그들에겐 언제나 역경의 기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대표에겐 신문기자는 적성이 아니었던 듯싶다. 고향으로 내려와 지내는 데 사회적응이 어려웠다. 기자생활이 벌써 몸에 배인 듯 했다. 아는 선배의 추천으로 광주로 옮겨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학원을 다녔다. 그곳에서 영어 강의도 했다.
그곳에서 새벽 6시 일본어 수강을 하던 아가씨와 눈이 맞아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인연은 참으로 소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보광약품에 입사해 사무관리직을 맡았다. 급여는 많지 않았다.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차라리 영업직으로 뛰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자존심만 내려놓고 성실하게 진심으로 대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뿐이었다. 목포와 나주 지역의 약국이란 약국은 무조건 들어가 인사를 했다. 병원도 빼놓지 않고 다녔다. 어떤 경우는 약국 고객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의사 진료가 끝날 때까지 몇 시간이고 대기실에서 기다린 적도 있었다. 사실 그런 일이 다반사였다.
한 번은 ‘약’이라고 써진 간판만 보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주인이 “뭘 드릴까요?”라고 말하는 데 진열된 물건들이 이상했다. “약국 아닌가요?”라고 물었더니 주인은 “약은 약인데 농약이요!”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인사를 크게 하면서 잘못 들어왔다고 했다. 이 정도로 이 대표는 열심히 뛰었다.
이 대표가 처음 의약업계에 뛰어든 것은 1995년이다. 나주에 있던 보광약품이라는 회사였다. 이곳에서 8년여 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런 노력으로 돈을 모았고 2001년에 설립된 광주의 고려메디텍(주)을 2003년 6월에 인수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듬해 서구 금호동에서 풍암동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기대와는 달리 매출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상호 바꾸고 열심히 뛰니 잘 풀려
회사 이름의 발음이 어렵고 무엇인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는 말이 들렸다. 아내의 말을 듣고 본사를 양동으로 옮기고 상호를 안성약품(주)으로 바꿨다. 새로운 각오로 출발한다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때부터 무언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
원칙과 신뢰는 안성약품의 미래였다. 그의 행동을 보자면 “열심히 뛰는 자 앞에 장사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집념을 가졌기에 7년 6개월 만에 국내 및 수입 유통사 300여 곳과 거래를 하고 종합병원, 의원, 약국, 국공립병원과 보건소 등 500여 곳에 의약품을 납품하고 있다.
풍암동 사무실로는 약 보관창고 등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지난 10월 새로운 장소를 물색한 끝에 한 후배의 추천으로 광산구 쌍암동 임방울대로의 프런치타워 4층을 분양받아 본사를 이전했다.
이 대표는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의 하나로 의무경찰의 경험을 살려 지역 경찰서의 교통심의위원으로 있다. 서부 관내 교통안전시설 관리에 대한 여러 의견을 개진했다.
또 가까이 지내던 세무사의 추천으로 지역 세무서의 세정협의회 위원으로 있다. 건전한 납세풍토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주변 동료들에게 납세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더욱이 이번 사옥 이전 개업식 때는 축하 화분 대신 지인들에게 일일이 알려 쌀로 받았다. 그렇게 쌀 30여포를 한동안 회사가 성장세를 얻었던 것은 양동 시절이라며 양동주민센터에 불우이웃돕기로 기증했다. 지인이 제주대 약대 교수로 있어 그의 요청으로 제주대 약대에 매월 일정액을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등 작지만 꾸준하게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대표는 “키우리와 인연을 맺은 것도 가족, 고향 등 여러 아름다운 인연들의 복합체였다”고 생각한다. 한 다리 건너면 정다운 이웃이요 친구라는 사실을 키우리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