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섬을 가다 27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홍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홍도 섬 “홍도”를 널리 알린 노래 “홍도야 울지마라”는 우리의 인생사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세상을 달관한 전라도의 애환을 노래한 것 같은 느낌이다. 오빠를 공부시키기 위해 기생이 되어야만 했던 홍도는 오빠친구인, 필자와 이름이 같은 ‘광호’와 결혼하지만 과거 때문에 버림받게 되고 설움에 복받쳐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이 몸바쳐 공부시킨 오빠의 손에 의해 잡혀간다는 일제강점기 1936년에 발표된 연극을 노래로 만든 것으로 ‘홍도’를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신라의 골품제로부터 시작된 우리 한반도의 노예제도는 무려 1,500년의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자국민을 노비로 삼는 야만적 제도’로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케 한 ‘동방노비지국..

유배 그 혹독함, 흑산도

유배 그 혹독함, 흑산도 과거 우리나라에서 섬은 대부분이 형벌(刑罰)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바다로 둘러쌓인 섬들은 육지와의 왕래를 차단하고 또한 외부와의 소통을 막는데 적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당시 형벌의 기준인 ‘대명률’에 의한 형벌집행에도 최적의 명분을 제공한 것이 바로 섬이었다. 또한 고려 강화도의 기억과 진도 고려국의 기억 때문에 섬은 집권층에게는 기피의 대상이 되었고 또한 홍길동이나 정감록처럼 새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이상(理想)으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전라도에는 섬이 많다. 현재 유인도 301개, 무인도 1,766개가 존재한다. 우리나라 섬은 총 3,348개나 된다. 사람이 사는 유인도가 472개이고 무인도는 2,876개라고 한다. 전라도가 차지하는 섬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당연히 전라..

재조지은(再造之恩), 해남도

재조지은(再造之恩), 해남도 해남도(海南島)라는 섬이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아주 조그마한 고금도 윤동 옆에 있는 섬이다. 이름 없는 섬이라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섬이지만 해남도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해남도 옆에 살고 있는 고금도 윤동 사람들은 아직도 똑똑하게 기억하면서 전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진린 장군이 거느린 명나라 2만수군이 진주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며, 무사귀환과 전공(戰功)을 빌기 위해 묘당도에 관왕묘를 세우고 또한 고향인 광동성 해남도를 생각하며 이름붙인 섬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랑께 묘당도와 고금도 조명연합수군의 본영이 있던 덕동 사이에 존재하여 수많은 병사들이 모여 취식을 한 쌀을 씻은 물이 흘러내려 긴 바다로 흘러가 왜구들이 감히 범..

한중우호의 가교, 청산도

한중우호의 가교, 청산도 청산도(靑山島)로 가기 위해 배를 탔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주민 2,500여명이 사는 섬에 하루에 5,000명의 관광객이 드나들었으나 지금은 한산하다. 우리 키우리산악회에서도 청산도 산행을 한 적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청산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청산도 하면 우선 생각되는 것이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슬로우시티(slow city)로 대한민국 최초로, 아니 아시아 최초로 2007년에 완도 청산도가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빨리빨리’를 외치던 한국에서 전라도 말로 하자면 ‘싸목싸목’ 차분하게 우리의 일을 처리하자고 하는 의미의, 성장 위주의 정책에서 이제는 나눔을 생각하고, 싸목싸목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로 바꿔보자는 슬로건이 전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소모도

요타쓰! 소모도 요타쓰? 무슨 말일까? 그 뜻을 말해주기 전까지는 누구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풀어 말하면 요트 타고 쓰레기 주우러 가자는 소리를 줄여 요타쓰라고 한다. 영어로는 비치코밍(beach combing)을 ‘요타쓰’라고 완도에서는 말하고 있었다. 완도에서 연락이 왔다. 요타쓰 하자고 한다. 요트를 타고 소모도에 가서 쓰레기를 줍는데 같이 하자고 한다. 좋은 기회였다. 무조건 좋다고 했다. 소모도는 작은 섬이다. 주민도 겨우 20여명에 불과하다. 주변의 바다가 깊고 해류가 강해 다른 섬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양식장이나 해조류를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없는 적막한 섬이 되어버렸다. 그런 소모도에 쓰레기를 주으러 간다니 의아하기도 했다. 그래도 완도 현지에 사시는 분들의 결정이니 무..

죽음마저도 겸손했던, 송이도

죽음마저도 겸손했던, 송이도 송이도(松耳島), 이름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섬에 소나무가 많고 귀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했다고 하나 송이도행 페리선에서 본 섬은 송이버섯 모양처럼 멀리서는 둥글게 보인다. 보살섬이라고도 했다 한다. 칠산바다의 거칠고 거센 바다가 송이도 사람들에게 풍요와 부를 바라는 대상이기도 하고 또한 원망과 고통을 주는 실체이기도 했다.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 칠산도 연속된 이름으로 명명된 칠산바다는 행정구역상으로 송이도 관할이다. 전남 영광군 낙월면 송이도 산462번지가 일산도요, 산463번지가 이산도이다. 칠산도는 천연기념물 제389호인 괭이갈매기, 노랑부리백로와 저어새 번식지 보호구역으로 특별관리되고 있는 무인도이지만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이름이다. 보살섬 송이도로..

사도

천연기념물 ‘사도’ 새벽에 나섰다. 여수 사도(沙島)를 가기 위해서다. 하루 3차례 운항하는 첫배를 타야 당일치기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섬여행이 그래서 어렵다. 어떤 때는 안개 때문에, 혹은 태풍 때문에 발이 묶이거나 일정이 갑자기 변경되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도 전라도의 섬을 다니다 보니 정말 사도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는 정말 작은 섬이다. 그 작은 섬이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434호이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인 섬, 그 섬에는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꼭두새벽에 광주에서 출발하였다. 지금은 여수의 많은 섬들이 다리로 연결되어 언제든지 섬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고, 사도도 연결하려면 할 수 있지만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과 문화재로 지정되어 연륙되지 ..

신지도

대한민국 해양치유 1번지 신지도 신지도란 섬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28번째로 큰 섬임에도 불구하고 신지도란 섬을 잘 모른다. 고운 모래가 깔려있는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있는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여름에만 반짝 알려질 정도이다. 신지도란 섬이 처음 역사에 등장한 것은 1470년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그 이후 완도가 가리포로 명명되어 전쟁에 대비하는 대장군전 및 각종 대포와 총통, 판옥선과 거북선 등이 만들어지고, 장보고의 청해진제국처럼 일대가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신지도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장보고 청해진제국의 본영 바로 앞이 신지도다. 우리 역사에서 섬은 사람이 사는 땅이 아니라 원악도(遠惡島)라고 했다. 멀리 해야 될 곳으로 단정했다.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생각하게 만들..

임자도

예술혼을 깨운 임자도 전남 신안에 임자도란 섬이 있다. 이름대로 검은깨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서 임자도(荏子島)라 했다 한다. 지금은 연륙교가 완공되어 배를 타지 않아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는 전라도를 다시 생각케 하는 섬이다. 특히나 육지도 아닌 외딴섬에서 전라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조선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 지배세력이 되고자 몸부림치다가 거부당하고 양반 기득권층 싸움에 휘말려 유배를 당한 임자도에서 체득한 예술혼으로 한국 문인화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우봉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이 있기 때문이다. 1851년 추사 김정희의 하수인이라는 이유로 조희룡은 임자도에 유배되었다. 그는 중인 출신 화가로서 자신의 그림을 팔아 생계를 이어 나가야 했고, 따라서 지배층 집권세력 양반층의..

선도- 수선화의 섬

수선화의 섬 선도 추운 겨울이 가고 따스한 봄이 오면 제일 먼저 전라도에 꽃이 핀다. 매화가 꽃소식을 알려왔지만 올해도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든 꽃이 피지 않은 것 같다. 바이러스가 꽃마저 밀어낸 모양새다. 그 중에서도 선도의 수선화축제가 못내 아쉽다. 2019년 봄 제1회 수선화축제를 열어 그 작은 섬에 1만 2천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섬이 생긴 이래 최대의 인파가 몰려 수선화가 섬을 살렸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2021년에도 수선화의 섬 선도가 되기를 바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선도에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한다. 무안군 운남면 신월항에서 배를 타면 30분이면 도착한다. 섬모양이 매미를 닮았다고 하여 선도(蟬島)라고 했다 한다. 선도에서 수선화를 심어 축제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