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섬을 가다 27

정가섬

정가섬 완도 약산도에 정가섬이 있다. 최근에는 어민접안시설 설치로 인하여 연륙되어 섬이라는 기능을 상실했다. 그러나 이 조그마한 섬이 그야말로 세계적인 업적을 이루어낸 출발이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류의 열풍속에서 전라도가 만들어낸 세계최고의 히트상품인 '김'(海衣)을 만들어낸 시작이 이 조그마한 섬에서 기인한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김이 많이 양식되었다. 자연산 돌김을 채취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인공적인 시설을 통해 양식으로 김을 얻고자 함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양식으로 김을 생산하던 섶꽂이 양식보다 발달한 방법은 대발을 설치하여 김을 양식하는 떼발 양식이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양식은 완도군 조약면 장룡리에 살던 정시원(鄭時元)이 그곳 앞바다의 죽도(竹島) 부근에 ..

묘당도

묘당도 전라도 남쪽 완도 고금도에 속해 있는 조그마한 묘당도라는 섬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작지만 전라도에서 가장 위대한 역사를 가진 섬이다. 중국과 한국이 처음으로 연합하여 일본을 물리친 거점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일제강점기 때에 반일유적파괴사업의 일환으로 진린과 이순신이 만들었던 고금도 삼도수군통제영과 진린의 조명연합수군 대본영의 유적들이 사라지기 시작하여 이후 말끔하게 사라졌다. 진린이 만든 관왕묘는 바다 속에 쳐박혔고 유적과 시설들은 원형대로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우 조선 정조 때에 세운 탄보묘비와 우물터만이 존재할 뿐이다. 진린이 만든 묘당도의 관왕묘도 원형대로 찾아볼 수 없다. 진린의 흔적조차 말끔히 사라졌다. 그렇게 잊혀져 갔다. 명나라 진린 도독..

남해안의 제일절경 백도

남해안의 제일절경 백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다. 배가 불러야 제 모습의 풍광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백도가 그렇다. 그냥 흔하고 흔한 섬일 수도 있으나 백도가 어장을 형성하여 근처 어민들의 배를 불려주기에 신령한 섬으로 대접받고 있다. 또한 백도는 거문도를 찾는 사람들이 거의 필수적으로 찾는 관광지가 되고 있다. 1979년 국가명승 제7호로 지정된 백도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던 섬이었으나 사람들의 분별없는 이용이 천혜의 자원을 가진 무인도인 백도의 자연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자 2001년부터 출입이 금지되었다. 지금은 멀리서 바라볼 뿐 허가받지 않으면 아무도 상륙할 수 없게 되었다. 아득한 수평선만 보이는 넓은 바다에 하얗게 빛나는 백도만이 존재할 뿐 여기에서 육지는 아득하게 느껴졌다. ..

목포 고하도

목포 고하도 목포앞바다에 있는 고하도의 옛 이름은 보화도(寶花島)였다. 보화도라는 지명은 많은 사람들이 처음 듣는 이름일 수도 있다. 2012년 목포대교가 건설되고 육지가 되면서 우리나라 국도 1호선의 기점이 되었고, 우리나라 최장 최고 목포해상케이블카가 개통되면서 이제 관광전남과 관광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목(目)으로 성장한 관광목포의 중심의 되었다. 도서연륙사업으로 목포대교가 건설되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섬이 되었고 또한 목포해상케이블카가 설치되면서 이름 그대로 보물같은 꽃이 핀 것처럼 목포를 더욱 빛내고 있다. 보화도라는 말은 1597년 명량에서 왜구를 대파했지만 워낙 열악한 상황으로 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싸울 무기도 군량도 병사도 없어 왜구들의 보복 반격이라는 총공세에 쫓겨 일시 피난..

영광 설도

영광 설도 눈(雪)은 겨울을 상징한다. 언제부턴가 전라도에는 눈이 뜸해졌다. 기후가 변화하면서 아예 눈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눈으로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극히 드물다. 특히나 남부지방인 영광에 설도(雪島)라는 섬이 있다고 해서 놀랐다. 어찌하여 눈의 섬이라는 설도가 존재하게 되었을까? 지금은 영광과 무안을 연결하는 칠산대교가 개통되어 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길목에 설도가 위치하여 젓갈타운 및 회센타 등이 들어서 있으나 과거에는 와도(臥島)라 했으며, 일제강점기에 제방을 쌓아 간척지가 되면서 섬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때부터 설도가 되었다고 한다.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리지 않는 전라도에 설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 있다니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설도 주위를 탐방하다 보니 금방 느낌이 ..

완도 주도

섬은 왠지 외롭게 느껴진다. 어딘가 고독하고 쓸쓸하며 소외되고 낙후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육지에 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 같다.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섬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이상의 세계를 펼친 곳이었다. 특히나 전라도의 섬은 더더욱 그렇다. 섬이 아니면 우리 역사를 이야기할 수도 없을 정도로 섬은 그야말로 새로운 이상을 꿈꾸는 숨겨진 장소로 섬은 존재했다. 고려시대 몽골이 침략했을 때에 강화도로 천도하여 무려 35년 동안이나 버티며 고려왕조를 유지했다. 그 이후로 섬의 가치가 급부상했다.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이나 전우치전에 나오는 태인도나 임꺽정전에 나오는 완도나 삼별초항몽전쟁에 나오는 오랑국 진도를 보면 섬이 역사의 중심에 서고 있다. 섬은 권력에서 멀어진 사람들이나 범죄..

완도

한반도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완도 완도는 그야말로 세계문화유산급 역사를 만들어낸 곳이다. 과거의 영광을 오늘에 되살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것을 우리는 완도몽(莞島夢)이라 할 수 있다. 곧 ‘Wando is back’이다. 과거의 화려한 영광을 오늘에 재현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그러한 꿈을 그려낼 수 있는 곳은 완도가 유일할 것이다. 그래서 완도해양문화복지포럼에서는 감히 ‘완도학’이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완도학’이 되기 위해서는 인류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역사의 원동력으로 작동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고 만들지 못한 완도라면 ‘학’(學)을 붙일 수도 없을 것이다. 완도가 중심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명을 유지시키는 토대가 되었음을 입..